따뜻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이 가득한 5월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습니다. 삶을 옭아매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할까요. 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증발하고 싶다고 할까요. 하지만 놓아버리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제 욕망이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현실을 뛰어넘기도 도피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내가 가보지 못한, 해보지 못한 것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는 거죠. 그 중 판타지라는 장르는 상상의 세계에서 무궁무진하게 또는 적나라하게 현실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끔 현실을 잊으려고 판타지 작품을 보지만, 오히려 현실을 더 마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현실을 그려내는 작품들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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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란 가장 잔혹한 동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기예모르 델 토르,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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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판타지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저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라고 답할 것입니다. 기예모르 델 토르 감독이 구현한 판타지 세계의 미장센과 지옥보다 더 잔혹한 현실이 완벽하게 공존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읽어주셨던 수많은 동화 중 인어공주가 가장 좋았습니다. 다른 동화의 주인공들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쟁취했지만,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세상에서 사라졌거든요. 아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어공주의 결말이 가장 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가 좋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무섭고 낯선 상황 속에서 자신이 지하 왕국의 공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모험을 시작합니다. 모험을 시작할 때는 오필리아가 어서 정신을 차려야 할텐데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끔찍하고 잔혹한 현실을 벗어나 판타지 세계에서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는 여러분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더 적합한 판타지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를 지금 바로 시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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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판타지
99강화나무몽둥이(네이버웹툰, 2022) <99강화나무몽둥이>는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주인공이 노력 없이 세계관 최강자가 되는 판타지 웹소설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전형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동류의 작품들에 비해 ‘어떤 이유’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 답은 “전개 속도”입니다. 최근 유튜브 쇼츠가 5조 뷰를 넘기며 틱톡과 함께 숏폼 콘텐츠의 대세를 입증했고, 웹툰 역시 웹에서 모바일로 주 시장이 옮겨가면서 작품의 구성이 점점 짧고 빨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빠르기만 해선 안 됩니다. 이 속도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효율성이 있어야 합니다. MZ세대 수요의 근본이 정보의 바다에서 퀄리티가 높은 정보를 빠르게 얻고 싶은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라고 했습니다. <99강화나무몽둥이>는 마치 방망이 깎는 노인이 방망이를 깎듯이 스토리의 군살을 정교하게 깍아내어 제목처럼 가장 기본의 무기를 극대로 강화시킨듯한 단순함을 보여줍니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현 시대의 아젠다를 확인하고 싶다면 꼭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
고전의 올바른 재해석
그린나이트(데이빗 로워리, 2021)
고전의 매력은 시간이라는 유한한 장벽을 넘어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감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재미를 이끌어내는 작품이기 때문에 고전을 각색한다는 것은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일도,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그린나이트>는 이 우려를 뛰어 넘어 완벽하게 고전을 재해석 및 재창조했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은 14세기 영국에서 쓰인 작자 미상의 2,500행 두운시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입니다. 녹색의 기사,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 주인공 가웨인 등 모든 주요 등장인물이 원작과 동일하게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궤도를 조금씩 변경하여 새로운 여정을 그려냅니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죽음'은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관문이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순간입니다. 기사로서의 명예와 무용담을 위해 죽음으로 향하는 가웨인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유약함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웨인의 여정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영화를 시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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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작 어때?💁♀️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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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은 현대의 신화라고 불립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새로운 영웅을 창조한 것이라죠. 하지만 구성이 고착화된 공장식 영화에 불과하다고도 합니다. 독자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 맞다고 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건 마블 영화는 이제 전혀 기대가 되지 않고 오히려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블은 감독의 연출을 통해 단편적인 구성을 보완하는 전략을 써오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대혼돈의 멀티버스'라는 부제를 색다르게 선보일 수 있도록 샘 레이미 감독을 기용했습니다. 나름 훌륭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스파이더맨>과 <드래그미투헬>로 잘 알려진 샘 레이미 감독의 고심한 흔적이 영화 곳곳에서 보이니까요. 하지만 거기까지가 다입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개봉된 마블 영화 중에서는 <어벤져스 : 인피니트 워>, <캡틴아메리카 : 시빌워>가 마블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작품에서는 영웅놀이는 그만하고 좋은 작품을 보여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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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모아모아 수군수군👂
큐레이터 한여름이 직접 본 작품들의 별점과 한줄평을 소개합니다.
- 영화 런(아나쉬 채켄티, 2020) ★★☆ 아쉬운 뒷심
- 다큐 암살자들(라이언 화이트, 2020) ★★★☆ 21세기의 암살의 섬뜩함
- 영화 서버비콘(조지 클루니, 2017) ★★★ 폭력을 통한 역설적인 풍자
- 드라마 장미맨션(Tving, 2022) ★★☆ 짬뽕이 더 맛있어요
- 만화 괴수 8호(마츠모토 나오야, 2021~) ★★★ 아는 맛은 계속 찾게 되는 법
- 애니 Sonny Boy(나츠메 신고, 2021) ★★★ 재난이 없어도 이미 재난 속에 살고 있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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